출처:(왼)울마크컴퍼니 (오)구글이미지

울마크는 어떻게 붙여지는지 아세요? 울 함유량에 표시가 국제인증 해주는 기관이 있다는 걸 아셨나요?
AWI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64년 IWS국제 양모사무국으로 있던 더 울마크 컴퍼니에 소개 됬으나 2007년 호주시드니에 본사를 둔 AWI(Australian Wool Innovation Limited)와 합병되어 울을 홍보하는 비영리 기구 AWI로 재탄생했습니다. 값싼 합섬유에 대응하여 고급 울 제품의 이미지 손상을 방지하고자 양모생산국들에 의해 고급 품질 상징 마크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특정한 품질규격 및 테스트를 통과한 제품만 부착되며 심벌은 이태리 그래픽 아티스트 프란체스코 사로갈리아가 창안하여 140이상 국가가 등록 하고 있습니다.

혼용율에 따라 3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출처:(왼)울마크컴퍼니 (오)구글이미지
*울마크 심벌
신모 100%함유. 소비자들이 의류 구매시 확신을 갖게하여 심벌의 유무에 따라 소비자들은 값을 더 지불하기도 한답니다.


출처:(왼)울마크컴퍼니 (오)m.blog.daum.net:chlgi:
*울마크 블렌드 심벌
신모 50% 이상 함유. 고품질 제품을 차별화하기 위해 1971년 소개되었습니다.


출처:울마크컴퍼니
*울블렌드 심벌
신모 30%이상 함유된 제품.

**신모란..
양에서 깍은 털 그대로 사용. 의류나 카펫등 제품으로 사용된 것을 재생양모라고 합니다.

울제품 관리방법과 울(모)에 대해궁금하신 분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해주세요.^^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울이란? 울제품 관리방법'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참조:더울마크컴퍼니,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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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 LVMH로 넘어가기 전/후
아버지가 목수였던 어린 루이 비통은 원래 목수가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던 루이는 1835년 15세 때 고향을 떠나 파리로 향합니다. 당시 자동차, 기차도 없던 시기. 파리로 가는 길에 식당이나 마구간에서 여비를 벌어 1년만에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가방점 구인광고를 보고 무작정 들어간 루이. 파리에서는 가방점에서 가방 판매 외에도 부유층 짐을 대신 싸주는 일을했는데. 그곳에서 루이는 짐 싸는 일 부터 시작합니다. 가방을 잘 싸 그의 실력은 파리에 유명세가 됬고, 나폴레옹 3세 황실까지 소문이 났습니다.


(왼)루이 비통 (중앙,오른쪽)나폴레옹 3세(1808~1873) 부인 유지니 황후
출처:(왼)위키피디아 (중앙,오른쪽)friend25kr.blogspot

나폴레옹 3세 부인 유지니 황후는 옷을 많이 가지고 다니기로 유명합니다. 다른 나라로 여행 갈땐 300여벌 정도 옷만 가지고 다녔는데, 당시 귀부인이 입었던 옷 한벌이 약 6kg정도라 옷만 약 1.8톤만 가져 다닌겁니다. 옷들을 구겨 지지 않게 도와 준 사람이 루이 비통. 30이 넘도록 루이는 황후의 짐 싸며, 실력을 인정 받으며 황실에 일하던 어느날! 33세. 패커의 일로 가방에 대해 전문가가 된 그는 황후의 후원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여행 가방점을 엽니다.


어린 나이에 홀로 고향을 떠나는 것도 큰 모험이었을 텐데, 그는 어떤 심정으로 떠났는지 새삼 궁금합니다. 당시 잡일에 불과한 짐싸는 일. 사소한 일이라도 열심히,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진다면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지원해주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그 뒤에도 꾸준히 자신의 장점을 키워 열심히 한다면 명품이 된다. 루이 비통이 주는 교훈이 아닐까요? 명품은 정말 아무나 명품이 되는게 아니구나 하는걸 다시 느끼는 계기가 됬습니다.


(왼)당시 여행가방 트렁크 (중앙,오)루이 비통이 만든 트렁크
출처:(왼,중앙)google image (오)parisart.tistory

교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부유층이 늘게 되었고, 귀부인들은 여행때 마다 값비싼 옷을 담아 다녔는데, 당시 사진에서 보는것 처럼 위가 둥근 보물상자 처럼 생긴 트렁크는 운반하기 불편한 디자인이었습니다. 1854년 루이 비통은 그레이 트리아논 캔버스로 제작된 사각 형태의 트렁크를 만들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사각 트렁크!. 쌓을 수도 있고 방수 캔버스로 방수도 잘되고, 내부에 칸막이가 있어 효율적으로 정리 할 수 있었습니다. 트렁크로 그는 짐싸는 패커 뿐만아니라 제작자로도 유명세가 되었고, 가게를 오픈한지 5년 만에 공장을 설립했고, 수백명의 직원을 거느렸습니다. 1859년. 아들 조르주 비통에게 사업을 물려주는데, 그는 루이 만큼 아이디어와 솜씨가 뛰어났고, 1867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왼)루이비통2세. 조르주 비통 (오)루이비통3세. 가스통 비통
출처:pandalouis.tistory

파리 세계 박람회 하면 누가 또 떠오르지 않으세요? 얼마전 포스팅한 에르메스. 1867년 티에리 에르메스가 1등. 그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가 1878년에 수상. 그러면 루이 비통 아들 조르주 비통과 티에리 에르메스는 같은 박람회에 함께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거둔거로군요!!
에르메스 관련 포스팅은 아래 에르메스 상표를 클릭해주세요 ^^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에르메스'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인기가 높은만큼 당시에도 루이 비통은 모조품 많아 조르주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1872년 첫 모조품 방지를 위해 줄무늬 트렁크가 탄생했습니다. 조르주 비통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실용적인 여행가방을 만들었고, 프랑스를 넘어 영국, 미국에도 고객이 생겨, 1885년 런던과 뉴욕에 매장을 오픈하면서 전 세계로 사업을 확대 해 나갔습니다.


(왼)디미에 (오)모노그램
출처:google image

하지만 다시 모조품이.. 또 다시. 모조품을 방지 하려고 두번째 모조품 방지. 1988년 ‘다미에’ 패턴을 선보입니다. ‘다미에’는 현재의 루이 비통의 시그니처 패턴! 그 당시 19세기 귀족 사회 영향으로 명품브랜드가 되어 모조품이 많이 생겼던 것입니다. ‘다미에’패턴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모조품으로 고생하여 이번엔 아버지의 머릿글자 L과 V를 따서 마지막 세번째 모조품 방지.1896년 오늘날 루이 비통의 상징 모노그램이 탄생한 것입니다. 조르주는 더 이상의 모조품을 방지하고자 상표등록까지 했고, 그 뒤의 모조품은 모두 고소 합니다.


출처:(왼)google image (오)news.zum

그 후 조르주는 모노그램을 활용해 주전자와 찻잔을 넣을 수 있는 티 세트 트렁크, 타자기를 보관 운반 할 수 있는 트렁크를 만들었으며, 여행자들을 위해 가방 주인 이니셜을 새겨주었습니다. 획기적인 디자인과 실용적 여행가방으로만으로 명품은 될 수 없겠죠? 여행가방에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내구성!. 그는 가방 실험을 위해 직접 가방을 들고 실험에 나섰습니다. 루이 비통 가방은 현재까지도 그 장인 정신과 내구성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샹젤리제 거리
출처:(왼)google image(오)럭셔리

파리의 서쪽 지역은 점차 발전했고, 1914년 루이 비통은 현재 본점인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로 이동 했습니다. 루이 비통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귀족들은 더 많이 찾게 되었고, 1940년 2차 세계대전에서도 사그라 들지 않았습니다. 그 유명한 샤넬도 이 시기에는 문을 닫게 되는데 말이죠. 독일이 파리에 쳐 들어왔지만 독일은 이미 루이 비통에 매료 되있었기에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 후, 시대는 더이상 딱딱한 트렁크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당시 자동차가 탄생하던 시기였기 때문 입니다.


(왼)노에 (오)파빌론
출처:google image

시대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소프트 백을 만들지만, 민무늬는 인기가 없었고, 모노그램천은 너무 두꺼워 난간에 부딪힙니다. 조르주의 아들은 부드러운 모노그램 캔버스를 만들어 1932년 가스통은 첫 번째 소프트백 ‘노에’를 탄생 시킵니다. ‘노에’는 면에 비해 부드럽지 못했고, 1959년엔 면과 같은 소재로 모노그램을 완성. 1966년엔 ‘파빌론 백’ 탄생.


(왼)'에피' 라인 (오)베르나르 아르도
출처:(왼)google image (오)위키피디아

소프트 백은 트렁크에 비해 저렴하고 편해 그 인기는 아시아 까지 넘어 왔습니다. 일본에 들어온 루이 비통은 너무 비싸 일본 사람들이 프랑스 까지 가게 된 사태. 1978년 루이 비통은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 매장을 오픈 했고, 1985년엔 ‘에피’라인을 런칭하면서 성공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위기는 찾아오는 법이죠? 1980년 사람들의 취향이 더욱 다양해 지면서 뤼이비통은 촌스러운 브랜드로 낙인되면서 가족경영이 힘들어 졌습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프랑스 국립 행정학교를 졸업한 ‘베르나르 아르도’ 그는 루이 비통만 아니라 명품 브랜드가 힘이 없을때 집어 삼키는 명품 사냥꾼. 하지만 다 망해가던 루이 비통은 그의 경영으로 예전가치에 비해 더 뛰어난 세계적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왼)마크 제이콥스 (오)마크 제이콥스와 그래피티
출처:(왼)구글 (오)s20.co.kr

(왼)2013 s/s 마크 제이콥스 (오) '베르니'라인
출처:(왼)blogdegalleria.tistory (오)pursevalley.blogspot.

(왼)무라카미 다카시 (오)모노그램 멀티 컬러
출처:(왼)yamatinen다음블로그 (오)구글

1997년 루이 비통 새 아트디렉터 ‘마크 제이콥스’가 되면서 의류라인을 출범했고, ‘베르니’라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래피티' 또한 마크제이콥스가 탄생시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일본인 아티스트 타카시 무라카미와 콜라보레이션으로 모노그램 멀티 컬러를 론칭했습니다.


(왼)루이 비통5세. 파트리크 루이 비통 (오)핫스탬핑
출처:(왼)news.zum (오)관세청블로그

루이 비통의 자손들은 어떻게 됬을까요? 경영은 이미 넘어갔지만 제조 기술자로 특별 주문 제작과 홍보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젖병 케이스, 케이크 상자 같은것이 이에 속하는 것이죠. 백년 전과 같이 이니셜 새기는 서비스는 여전하고, 왕족들이 주문 제작 하듯 고객 맞춤 제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행가방과 가죽 소품에 무료로 시그니처 새겨 주는 ‘핫 스탬핑’, 맞춤 가방’스페셜 오더’, 모노그램 패턴에 원하는 색상과 이니셜 넣는 ‘몽 모노그램’
한 예로 김연아 스케이트 가방이 있죠? 포스팅 참조 하세요^^ 아래 김연아선수의 스페셜 오더 스케이트 트렁크 클릭!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스페셜 오더'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2013년에는 각 도시를 대표하는 색상으로 S/S광고 촬영했습니다. 뉴욕은 도시 상징 옐로우캡(택시)으로 노랑색. 파리는 시의 상징색인 자유의 파랑색. 블루. 상하이는 중국의 부와 행운을 상징하는 빨강색. 레드를 선택합니다.



출처:glamourboysinc.com
참조: 패션의 탄생.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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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 코트는 우비
트렌치(Trench)는 '도랑' ‘참호'의 뜻으로 적의 탄환으로 부터 몸을 보호 하는 참호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명품 브랜드 버버리 설립자인 토머스 버버리가 군인을 위한 레인 코트를 제작하면서 버버리의 대명사 프렌치코트가 생기게 됬습니다.

출처: Google Image

1차 세계대전 때 참호 안에서 영국군 장교가 착용한 우비에서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전쟁 후에도 전쟁터에서 자신을 지켜준 코트를 버리지 않고 전쟁용 외투였던 트렌치를 레인코트로 입었습니다. 남자만?! 이젠 여자들도 스타일리쉬하게~ 그 당시만 해도 남자들만 입었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는 여성들도 입는 대중적인 패션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캐주얼한 아이템은 물론 정장과도 잘 어울림과 동시 체형을 슬림하게 보여주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트렌치 코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우선 트렌치코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a. Chin Flap: 단추를 이용해 비바람 막는데 덮개.
b. Stom Flap: 비바람을 막기 위한 오른쪽 어깨 위에 덮는 천.
c. Equualette: 총, 쌍안경을 매기 위한 견장.
d. D-Ring: 수류탄, 칼, 수통을 부착하기 위한 고리.
e. Cuffs Strap: 풍우를 막기위해 소매끝을 조이는 벨트로 2개의 단추로 넓이 조절 가능.
f. Slotted Pocket: 기다란 구멍이 나 있는 일자형 주머니.
g. Inverted Pleats: 주름의 솔기를 맞닿게 하여 안쪽에 맞주름을 잡은 역 주름.
h. Wind Pand: 스트랩 모양 천으로 단추로 여며 바람을 막아주고 펄럭임 방지.
i. Cape Back: 비를 가장 많이 부위에 물기 스며드는것 방지 위해 2중천.

참조: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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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리바이 스트라우스 (오)제이콥 데이브스
출처: Google Image
1850년대 골드러시를 따라 미국 서부에 온 독일 출신 이민자 리바이 스트라우스. 광부에게 천막이나 포장마차용 질긴 천을 팔기 위해 캘리포니아 금광에 찾아온 그는 광부들이 천막보다 거친 일을 견대낼 질긴 옷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작업용 오버롤을 만들었습니다. 1880년대 말 청바지를 부르는 명칭은 '웨이스트 오버롤스', 청바지의 인기로 천이 부족해지자 리바이는 프랑스 남부의 님(Nimes)지방에서 질긴 작물을 들여왔습니다. 이 직물은 서지 드님(님 지방의 옷)이라고 불렸고 여기서 ‘데님’이라는 명칭이 유래했고, ‘진(Jeans)’이라는 말은 이탈리아 제노아 (불어로 Genes)항에서 온 선원들이 청바지 작업복을 입은 데서 유래했습니다.

(왼)구리리벳 (오)"말 두필이 양쪽을 잡아 당겨도 끄덕 하지 않아요" 광고
출처: Google Image
그리고 리바이스 청바지에 또다른 위인 제이콥 데이브스가 있습니다. 그는 작은 양복점 했고, 리바이의 가게에서 전기적으로 범포와 천막용 천 주문을 했었습니다. 그의 고객들 중 '옷이 튿어진다.' 바지 앞쪽 주머니가 시작되는 허릿단과 옆션의 이음새가 문제였던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탄생한게 구리리벳! "말 필이 양쪽을 잡아 당겨도 끄덕하지 않아요."
하지만 특허 할 돈이없어 리바이에게 편지를 썼고, 리바이는 제이콥을 불러 공동으로 특허 신청서 작성, 재단사로 채용했습니다. 의복 주머니 보강에 금속 리벳 사용 특허 신청서는 번번히 기각되었지만 1873년 리바이 마침내 특허를 따냈으며 독점 판매권을 가졌습니다.

레드탭
출처: Google Image
1936년, 모든 제품 오른쪽 뒷주머니에 자그마한 빨간색 상표를 부착했습니다. 옷 바깥에 붙는 최초의 상표, 리바이스. 이 빨간상표가 여러분이 리바이스에서 늘 보는 레드탭 입니다. 레드 탭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품질 관리를 거친 제품임을 보증하는 표식으로, 레드탭은 구리리벳, 가죽 패치, 아치 모양의 박음질과 함께 리바이스를 대표 합니다. 1950년 제2차 세계대전 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체제로 변하면서 실용적인 아이템에서 카이보이, 배드보이 이미지를 얻게 되고 자유를 갈망하는 젊음이들을 상징하게도 되면서 점차 보보스 [부르주아 + 보헤미안 (정통을 비웃던 자유주의자, 예술가, 지식인)] 등 사회변화 속에서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리바이스 라이벌
리바이스와 함께 진 브랜드의 양대 산막인 ‘리(Lee)'는 1889년 설립 하였습니다. 설립 초엔 음식관련 업체였으나 1924년 첫 ‘리 카우보이 팬츠’ 카우보이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졌고 1926년에는 세계 최초로 기존의 앞트임 단추를 지퍼로 교체한 청바지를 만들면서 Lee도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또 현재의 ‘랭글러’(1943년 블루벨이 회사명 바꿈)인 다른 라이벌 ‘블루벨'은 1904년 빨아도 줄지 않는 샌포라이즈드(Sanforized) 천을 사용한 오버롤스 개발하면서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왼)Lee (오)Wrangler
출처: Google Image
청바지가 빨간색이었다면? 왜 청바지?
태생이 ‘노동자들의 작업복’ 리바이가 뱀을 피해 일하는 광부들을 위해 인디고 블루로 염색한 바지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1498년 바스코다가마 인디고를 얻을 수 있는 뱃길을 발견한 뒤 청색은 인디고 덕에 세계 어디서나 염색할 수 있는 색이었고, (인간의 오줌으로 발효시켜 사용하는) 인디고는 값쌋으며, 인디고로 염색한 직물은 햇볕에 잘 바래지도 않았고, 거친 노동에도 때가 타도 티가 잘 나지 않았습니다. 이외 여러 이유로 청색은 중세이후 값싼 옷의 가장 흔한 색이었습니다.


즉 청색은 청바지가 탄생 전부터 서민의 의복 대표색상이 되었고, 1930년 미국 사회학자 업튼 싱클레어가 사무직 노동자를 통칭하는 화이트칼라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이에 반대된느 개념으로 육체노동자를 통칭하는 블루칼라 자연스레 생기게 됩니다.

인디고. 라틴어 indigo(쪽)과 fero(있다)의 합성어. 쪽에서 염료를 취함.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청바지 가격은?
2001년 우리돈으로 약 6000만원 1998년 네바다 광산 진흙속에 묻혔다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바지는 리바이스가 구매했습니다.

(왼)가장 오래된 청바지 (오)리바이스 슈퍼볼진
출처: Google Image
세계에서 가장 비싼 청바지?
리바이스 슈퍼볼진 - 15만 달러로, 2003년에 리바이스 탄생 15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브라질의 보석 제조회사 'H-Strern’이 최고급 장인으로만 구성된 보석 세공팀과 리바이스 본사의 시그니처급 디자이너로 구성된 특수 제조팀을 동원해 2개월 걸쳐 제작하였고, 세계에 한 장만 존재한다는 희소성으로 옷 가격만 85000달러, 최고급 다이아몬드와 루비, 백금, 등 귀금속으로 세공되어 65000달러 총 15만달러의 가치를 지닙니다.

참조: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에디터 T의 스타일 사전, 네이버,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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